1. 서론

   먼저 제 부족하기 그지없는 리뷰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가 없냐고 물어보셨는데, 전 사실 인터넷도 잘 안하는 평범한 30대 초반 직장인 입니다. 그냥 음악을 매우 사랑하고 20대 때에는 취미로 비보잉도 하고 음악도 조금 했던 그 시절 누구나 그랬을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재범군에 대해서는 사실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 한곡이 제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네요. 이틀동안 abandoned만 200번 정도는 들은 것 같군요. 지금 앨범 주문했는데 언제 올지 기다려집니다. 다른 곡에 대한 리뷰와 앨범 전체에 대한 리뷰는 모든 곡을 심도있게 자세히 들어본 뒤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태그나 그런 걸 할 줄 몰라서 음악이나 사진 자료를 못올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재범군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서 음악적인 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허접한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2. 박재범의 지향점은 Usher가 아닌 WarrenG?

  abandoned 첫 무대와 M/V를 보고 느낀 인상은 한국의 usher를 지향한다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abandoned를 이틀동안 쭉 듣고 나서 전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앨범의 제목은 Take a deeper look 입니다. 그런데 이 제목은 어디서 많이 본 제목입니다. 바로 G-funk의 마이에스트로 WarrenG의 1997년작 Take a look over your shoulder 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음악을 계속 들어보니 확신이 드는군요. 여기에서 WarrenG라는 생소한 아티스트에 대해 궁금하긴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미국의 힙합은 9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 미국힙합을 이끌었던 양대 축이 동부힙합과 서부힙합입니다. 동부힙합은 뉴욕을 중심으로 간략하고 단순하고 무게감 있는 비트에 라임을 확실히 맞추는 언어적 테크닉을 중시한 음악입니다. 반면 서부힙합은 기존의 단순한 힙합비트에 contemporary jazz, new jack swing, cicago house, disco같은 멜로디중심의 음악적 요소를 가미해서 곡의 감정의 높낮이가 매우 크고 보컬의 참여도 중시하는 음악입니다. 그런데 이 서부힙합이라는 카테고리에서도 극도의 Urban 요소를 추구한 아티스트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LBC파 입니다. LBC는 롱비치라는 동네인데 WarrenG와 nate dogg이라는 사람들이 이쪽 동네출신입니다. 어쨌던 WarrenG는 1994년에 힙합계에 혁명적인 앨범인 Regulate 라는 앨범을 발표하는데 그전까지 힙합이 반항적이고 파괴적이었다면 이 앨범은 그야말로 R&B의 바닐라 아이스크림같은 부드러움과 힙합의 차가운 이성을 적절히 조합한 고급 대리석같은 음악들의 집합체 였습니다. 멜론같은데서 WarrenG 의 Regulate 를 찾아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곡이 지금의 abandoned를 탄생시킨 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abandoned의 후반부의 why on abandoned me girl 이 반복되는 부분을 보면 파와 솔 사이의 반음을 반계단씩 올리면서 마디마디에 집어넣어 계속 긴장감을 유지시키는데 이런 식의 프로듀싱이 WarrenG의 전매특허였습니다. 물론 이 방식은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프로듀서의 천부적인 감각으로 타이밍을 조금이라도 잘못 맞추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곡이 나옵니다. 하지만 abandoned는 이 점에서 매우 좋은 점수를 받을만하죠. 16마디의 덩어리를 단 3개만 돌리면서도 전혀 지루하기 않은 곡이 나온 것은 반음 비트들을 절묘하게 배치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참고로 WarrenG의 I want it all 앨범의 Gangsta love라는 곡도 찾아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신세계의 음악이죠. 저는 재범의 지향점이 현재로서는 바로 Regualte에서 gangsta love로 이어지는 G-funk중에서도 극도의 Uraban을 추구한 90년대 힙합의 황금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의'라는 단서가 있습니다. Justin Timberlake 도 Justifeid 앨범에서는 마이클 잭슨을 추구했지만 Future sex에서 일렉트로닉스로 돌아섰죠.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왜 usher가 아닌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전 리뷰에서 usher의 초창기 앨범의 곡들과 abandoned가 비슷하다고 말씀드린 것은 그의 1997년작 My way 때문입니다. 이 앨범에서 usher는 극도의 urban을 추구하지만 비트감 있는 그루브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느끼하고 느리죠. 이 앨범의 Nice&Slow라는 곡이 있습니다. 아주 명곡이니 들어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어쨌던 이곡이 주는 아주 느리고 아주 섹시한 느낌이 초창기 usher가 추구하던 음악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대충 재범의 스타일과 WarrenG와 usher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usher쪽이 좀 더 냉철한 느낌이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죠. 그런데 8701 앨범에서 usher는 스타일의 변신을 보여줍니다. 아시다시피 U remind me 가 타이틀인 8701 앨범은 미국에서만 500만장 판매에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반 중의 명반이죠. 이 앨범에 You got it bad 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곡의 시작부분이 Abandoned와 유사합니다. 고요하고 쓸쓸한 느낌이죠. 그런데 Abandoned에서의 초반부는 후반부의 100bpm 정도의 긴장감 넘치는 하이라이트를 위한 긴장을 고조시키는 역할이라면 You got it bad는 쓸쓸함 자체가 곡의 컨셉이죠. 그래서 중심이 다른 곡이죠. 뉴에라 모자를 쓰고 근육질 몸으로 섹시함을 드러내고 웨이브 팝핀을 한다고 usher가 아닌데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음악의 지향점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듯 하네요.
  결국 재범군의 지향점은 WarrenG의 urbane groove를 가지고 있는 usher라고 볼 수 있겠네요. 퍼포먼스에서는 아직 데뷔 14년차인 usher를 뛰어넘는 가수가 없으니까요. 그의 스타일과 퍼포먼스를 어느 정도 참고만 했다고 봅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usher가 좀 느릿느릿하다면 재범군은 스타일이 좀 더 날카롭죠.)

3. 그의 음악적 파트너는 죽어버린 G-funk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

  10년전에는 힙합바지와 사이즈 XXL의 티셔츠를 입는 것이 소위 먹어주는 스타일이었죠. 저도 예전에는 그러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면 촌스럽기 이를데 없죠. 음악도 마찬가지인듯 합니다. 미국에서 그야말로 앨범만 냈다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G-funk는 90년대 후반에 들면서 사람들에게 외면받습니다. 이때 G-funk와 형제격인 R&B나 New jack swing (저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new jack swing 중에서는 신화 3집의 Only one이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도 같이 몰락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너무 먹으면 질리는 걸까요? 지금 미국 힙합을 보면 2000년대 초중반의 Dirty south 를 기점으로 멜로디도 비트도 점점 그로테스크 해집니다. 물론, 창의성과 다양성이 보여지는 점은 좋지만 마치 요즘 남자도 치마입고 화장해도 용인되는 것처럼 한계가 없어졌다랄까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아름답고 세련된 G-funk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미국은 모르겠습니다. 미국에 가본적이 없어서.) 그리고 그 중심에 soul company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레이블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들어보면 하나 같이 Urbane 에 목숨건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이런 음악은 마치 유명패션브랜드인 발렌티노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만드는 오뛰 꾸뛰르(고급 연회복)처럼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나올 수 있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찾아보면 정말 가뭄에 콩나듯 나오죠. The Quiett이 바로 soul company 출신이죠. 그리고 우연히 본 재범의 인터뷰에서 Musiq soul child와의 만남이 좋았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분 역시 Urbane에 목숨건 분입니다. Musiq soul child의 For the night 라는 곡을 들어보시면 감이 오실겁니다. 어쨌던, 그의 음악적 동지들을 보면 하나같이 지향점이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Urban의 부활이죠.
  저도 예전에 음악할때를 생각해보면 같은 힙합, 같은 R&B를 좋아한다고 해서 절대 취향이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1%의 차이때문에 많이 싸우게 되죠. 같은 R&B라도 Motown (80~90년대 미국의 대중힙합을 이끌었던 레이블이죠. Kriss Kross가 여기 출신입니다.) 취향의 빠른 곡을 좋아할 수도 있고, John Legend 같은 보컬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심지어는 R&B취향이었다가 Contemporary jazz로 갔다가 시부야 케이 쪽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말은 재범군이 얼마나 음악적 고집이 강하고, 얼마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가 2PM시절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느껴지네요. 저는 제 취향에 안맞는 음악이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나오면 속으로 '귀가 썪는 것 같다'고 느끼는데 재범군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도 안되는군요. 그래서 더 돈이나 명예에 관계없이 오로지 음악만을 추구해서 나온 음반이 지금의 TADL이라고 생각하고, 그 주변의 음악 동지들이 그 점에 깊이 공감했기에 기꺼이 그의 조력자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네요.

4. 박재범의 음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음악인의 취향은 변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Basic Groove라고 표현하는데요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어 제가 만든 표현입니다.) 음악에서 추구하는 기본 정신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제 이전 리뷰에 달린 리플 중에 메탈을 좋아하시다가 흑인음악을 들으신다는 분이 계셨는데 이를테면 80년대의 하드록들은 아주 감성적입니다. 멜로디 라인이 그야말로 아름답죠. 그리고 R&B인지 Rock 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정신을 공유하는 곡도 많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양성애자 George Micheal 의 밴드 White Snake의 Is this love를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곡은 Rock 이지만 재범의 Abandoned와 매우 유사합니다. 절제되고 세련된 멜로디, 그리고 도시의 외로움. 그러나 폭발시키지 않는 미학. Electro로 가볼까요? 여러분이 많이 아시는 Hawaiian Couple의 작곡가 Humming urban stereo (이지린)의 East come, Easy go 라는 곡을 들어보시지요. 역시 장르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느낌이 비슷합니다.
  저는 재범군이 음악 취향이 변한다면 아마 Electro House 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Derik Carter라는 미국의 하우스 DJ가 있습니다. 이 양반이 추구하는 음악이 80년대 디스코와 최신의 Electro의 결합입니다. WarrenG 음악의 뿌리가 바로 Disco (Disco라고 꼭 부풀린 머리에 나팔바지를 입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아닙니다.) 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재범군은 G-funk 의 Urbane groove를 잃지 않는 선에서 계속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usher처럼 되지는 않겠죠. 아마 Kanye west같은 스타일로 아닐겁니다. Kanye는 환상적인 샘플링 기술 (과거의 곡의 일부분을 따와서 짜집기해서 반복시키는 MR의 제작법)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지만 지금은 방향성을 잃고 말았죠.
  G-funk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변질되지 않고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여 계속 발전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실패했고, 타협했고, 심지어는 포기했죠. 하지만 성공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혁명입니다. 그리고 제가 볼때는 재범군이 그동안 억눌러왔던 그의 재능을 폭발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너무 조급해 한다면 역효과가 나겠지요.
  G-funk의 부활을 오랬동안 기다렸던 숨은 팬으로서 주류 음악계에 정신적 동료가 생긴듯 해 무척 뿌듯합니다. 아무쪼록 그 정신 잃지 않고 뚝심을 이어갔으면 하네요. 재범군은 아마 usher도 아니고 justin도 아니고 kanye도 아닌 그들의 장점만을 따온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머지 곡들도 얼른 들어보고 싶지만 음악을 제대로 들으러면 헤드폰으로 천천히 깔린 요소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어야 합니다. 씹을수록 맛이 나죠. 어쨌던 앨범 전체 리뷰로 또 올리겠습니다. 허접스러운 리뷰 봐주서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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