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와 오버 경계에서 힙합 음악을 끌어올리는 ‘더 콰이엇’

 

“한국 힙합 그 이상을 알고 싶으면 내게 와”

▣ 글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2011-07-12 11:47:58

[이창환 기자]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가 분명하게 나뉘는 한국 힙합 시장에서 양쪽을 사로잡은 뮤지션이 있다. 일리네어 레코즈의 ‘더 콰이엇(27)’이 주인공이다. 더 콰이엇은 한국 힙합 음악과 거리가 먼 사운드를 가지고 수 년 간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더 콰이엇이 추구하는 음악은 한국 힙합씬에 없는 한국 힙합이다. 더 콰이엇은 “유명해졌다는 이유로 손쉽게 주류음악계로 편입하고 싶지 않았다. 내 스타일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영역과 음악을 무한 확장 하고 싶어 하는 그를 인터뷰 해봤다. 

- 흔히 ‘언더그라운드’, ‘오버그라운드’라고 하는데 뭐가 다른 건가.
▶ ‘오버’는 TV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취향에 민감한 뮤지션을, ‘언더’는 무대 크기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을 지칭한다고 본다. ‘오버’는 상업성과 밀접해 외부적 요구가 많다는 점이, ‘언더’는 홍보비 투자가 부족해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하나의 특징인 것 같다. 




- 올해로 몇 년째 활동에 접어들었나.
▶ 힙합 음악을 시작한 지는 11년이고 본격적인 경력을 쌓은 지는 8년이다. (더 콰이엇은 2004년 ‘키비’와 언더 힙합 레이블 ‘소울 컴퍼니(Soul Company)’를 설립했다)


- 8년 동안 4장의 정규 앨범 등 65장 이상의 앨범을 프로듀서 했다. 양이 어마어마하다. 
▶ 20대 중반까지는 워커홀릭에 빠진 듯 몰두했지만 나중에는 즐기면서 사운드 작업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소울, R&B, JAZZ를 즐겨 들었던 것이 큰 자산이 됐다. 평소 음악을 들을 때도 샘플링 등에 대한 발상을 하기도 한다. 


- 다른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할 때와 자신의 음반을 만들 때의 차이는? 
▶ 내 앨범은 내 취향과 의도대로 완성할 수 있어 편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앨범을 제작할 때는 비위를 맞춰준다고 해야 하나, 그 사람의 대외적 이미지와 취향 등을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좀 까다롭다. 


- 대체적으로 프로듀서 제의를 승낙해주는 편인가.
▶ 2006년까지는 무조건 해줬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요청한 쪽의 실력 또는 인정할 만한 어떤 부분이 있는지 가늠한다. 


- ‘다작’의 결실인지 더 콰이엇 2집 ‘Q-Train’이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 왜 받았다고 보나. 
▶ 솔직히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심사위원들이 내 음반의 순수성에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그때는 언더 뮤지션들도 대중성을 염두 한 앨범을 내는 경우가 꽤 있었다. 


-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이 유명 힙합 뮤지션들과의 작업으로 직결됐다고 보나. 
▶ 무관하다고 본다. 유명 뮤지션들과의 인연은 ‘다이나믹 듀오’의 2집 참여 때문이었다. 2005년 말 ‘다이나믹 듀오’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그 자리에서 타이거 JK, 리쌍 등과 친분을 맺었다.


- 유명 가수들과의 작업이 명성과 수익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타이거JK와의 작업은 어땠나. 
▶ 드렁큰 타이거 7집 ‘Sky Is The Limit’의 프로듀서를 맡은 것은 행운이었다. 타이거JK는 힙합에 대한 내 관점을 물어보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자주 들려줬다. 힙합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23살이던 내게 자극을 줬다. 물론 앨범 완성도에도 도움이 됐다. 


- 2PM 리더 출신 박재범은 어떻게 알게 된 건가. 
▶ 도끼가 지난해 봄에 미국 시애틀에서 공연을 하던 중 박재범과 처음 만났다. 도끼의 소개로 친해졌다. 


- 아이돌 출신을 프로듀서 했다는 점은 의외다. 
▶ 박재범은 스타가 되고 싶기보다는 제대로 된 알앤비, 힙합뮤지션이 되고 싶어 했다. 아이돌 계를 잘 모르지만 박재범 같은 캐릭터가 있었다는 데 놀랐다. 2009년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2PM을 나왔을 친구다. 재범이는 다양한 힙합, R&B를 들어왔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깎듯 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면서도 미국 특유의 ‘쿨’한 행동이 배여 있었다. 


- 자신의 앨범 얘기를 해보자. 정규 4집 ‘Quiet Storm:A Night Record’를 통해 대중적인 음악을 시도했다는 평가가 있다. 
▶ 그 반대다. 발매 직전에도 코드, 악기음색, 리듬 등이 굉장히 마니아 적이라고 느꼈다. 평론가와 팬들이 대중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타이틀곡이 사랑 얘기였던 점과 사운드의 진일보때문이라고 본다. 사운드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대중성과 무관할 것이다. 


- 4집은 미국 최고 프로듀서 제이크 원(Jake One)이 참여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성사됐나. 
▶ 국내 프로듀서로는 한계를 느껴 마이페이스(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명의 프로듀서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 중 제이크 원, DJ 미쯔더비츠, 케프 브라운 등이 함께 해줬다. 


- 대단한 경험이었겠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 곡을 모으는데 1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언더 뮤지션에게는 큰 모험이었다. 내 생각대로 깊이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4집은 8000장 가까이 팔렸는데도 손익분기점을 못 넘겼다. 1만장 가까이 팔려야 넘는다. 


- 미국 프로듀서들과의 작업은 만족하나.
▶ 만족할 때까지 했다. 그들이 음원을 전달해주면 내가 원곡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정해 완성했다. 


- 사운드에 대한 집착에 비해 랩(Rap)에 대한 욕심은 없는 듯해 보인다. 
▶ 맞다. 내 랩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기교를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악센트도 많이 넣지 않는다. 


- 아마추어들이 따라 불렀다가는 ‘책 읽기’가 되기 십상인 랩이다. 그런데 더 콰이엇이 부르면 그르부(groove)가 느껴진다. 
▶ 보여주는 랩 보다는 랩의 디테일에 더 신경 쓰고 있다. 듣기 편하고 부드러운 음악을 추구하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B- 더 콰이엇의 가사가 일상과 더 밀접했으면 좋겠다. 다이나믹 듀오나 조PD, 리쌍의 가사 같은 풍자와 희노애락 말이다. 

▶ 나 또한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 의존해 가사를 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철학과 프라이드가 랩에 배어있는 것이 좋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려도 그 자체로 특별 하다고 본다. 


- 더 콰이엇 음악이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판도 있다.
▶ ‘식상해졌다’ 또는 ‘변했다’라는 비판은 언제든지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추구하는 색깔을 버릴 생각이 없으니 그 안에서 발전을 모색하겠다. 


- 더 콰이엇 음악 색깔은 Soul을 비롯한 R&B다. 유행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등을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 취향 탓이다. 나는 새로운 힙합 음악보다는 전통 옛 시대 흑인 음악을 계승한 힙합을 고수하고 싶다. 


- 샘플링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힙합 음악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이에 대한 입장은 
▶ 가장 고민하고 조심하는 문제다. 국내 음반 시장은 샘플링에 대한 저작권법이 아직 엄격하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 샘플링을 하려면 원곡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곡을 샘플링 하거나 알아들을 수 없게 바꾸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곡을 완성한 후에 또다시 검토한다. 법적으로 접근하면 ‘샘플링’이 불법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샘플링을 옹호하는 이들은 ‘힙합의 태생’과 ‘샘플링도 엄연한 실력’, ‘최근 음악 작업에 완전한 창조는 없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힙합의 태생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음악을 포함해 힙합문화는 불법으로 시작했다. DJ들이 음악을 자기 식으로 바꿔 레코드를 돌리던 것이 시초였다. 10년 정도가 흐른 시점부터는 그 점이 문제가 됐지만. 


- 마지막으로 올해 활동 계획은
▶ 가을 초 정규 5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열심히 활동하겠다.